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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달리타스와 한국천주교회] 성경 속의 시노달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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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획홍보분과 작성일22-11-07 08:54 조회2,1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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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소장 최영균 시몬 신부)의 ‘시노달리타스와 한국천주교회’ 강좌 두 번째는 한님성서연구소 주원준(토마스아퀴나스) 수석연구원이 ‘성경 속의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이어갔다.

주 수석연구원은 2018년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에서 발표한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의 공동합의성」 중 ‘성경과 성전’ 그리고 ‘역사 안에서 공동합의성’(1장)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다음은 주 수석연구원의 강의 요지다.
 

구약

공동합의성(synodality, 시노달리타스)의 기원과 특징은 성경에 가장 잘 드러난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느님 백성은 무엇보다 하느님께 충실하며, 동시에(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사회적 관계망과 맥락에 충실한 공동체로 이해된다.

성경은 태초부터 하느님께서 고립된 개인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친교의 표지 아래 그분과 협력하도록 부름받은 사회적 존재로 창조하셨다고 증언”한다.(12항, 창세 1,26-28 참조) 곧 인간은 본디 하느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함께 가는 공동체로 창조됐다.

창세기 선조들 이야기에 하느님 백성의 특징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은 고립된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았고, 각자의 가정 공동체에서 하느님 뜻에 충실하게 살았다. 창세기 이야기는 선조들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의 신앙이 이웃들과의 맥락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이집트 탈출은 하느님 구원 행위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건이다. 공동합의성과 관련된 중요한 용어는 모두 탈출 사건과 깊이 관련된다. 칠십인역은 탈출기 이름을 ‘나오는 길’ 또는 ‘탈출의 길’ 이라는 뜻의 ‘엑소도스’라 붙였다.

이집트 탈출로 백성의 ‘새로운 길’이 선명히 드러났고 이 길은 백성이 ‘함께’ 가는 ‘길’이기에 훗날 ‘시노도스’로 불리게 됐다. 라틴어로 ‘콘칠리움’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탈출한 공동체는 광야를 함께 지나갔다. 아브라함을 불러 모으신 하느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모세를 통해 백성들을 불러 모으셨다(신명 4,10). 하느님께서 ‘불러 모으셨다’는데 사용된 히브리어 ‘카-할-’은 훗날 ‘에클레시아’라는 그리스어로 번역돼 ‘교회’(ecclesia)라는 말로 전승됐다. 이렇듯 하느님께서는 시종일관 당신의 백성을 공동체로 부르셨으며 교회는 밖으로 나가는 공동체요 함께 가는 공동체가 그 본질이다.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함께 광야를 지나는 백성의 지도력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에 있다. 광야에서 일어난 갈등은 인간적 방식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따라 해결됐다. 그러므로 공동합의성이란 그 자체가 하느님 백성의 생활 방식과 활동 방식일 뿐만 아니라 공동합의성을 통하여 하느님 백성이 새로운 생활 방식과 활동 방식을 발견하는 길이기도 하다.

약속한 땅에 들어가서 하느님은 예언자를 보내시어 “역사의 길을 따라 걸으라는 요구를” 일깨우셨다.(14항) 예언자는 하느님 백성 내부의 의견 교환, 일치, 의사결정 등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준다.

신약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은 신비로운 방법으로 서로 통한다. 구약성경에서 드러난 공동합의성은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이시며 주님으로서, 당신의 케리그마를 통하여, 그리고 당신의 삶과 인격을 통하여’ 이끄셨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결코 혼자 행하지 않으시며, 모든 것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다.(이상 15항)

예수님 스스로가 순례자이셨고 제자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활동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면서 예수님께 배웠고, 그 길에서 삶과 행동의 방식을 복음적으로 변화시켜 나갔다. 실제로 예수님 스스로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의 세례와 성찬은 이런 공동합의성의 가장 빛나는 상징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함께 가는 길에 들어섰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에서 백성이 함께 가는 길이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하는지 가장 잘 드러난다. 성찬식을 통해 우리는 함께 가는 길의 궁극적 지향을 확인한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의 힘을 받게 되었고 신적 권위도 갖추게 되었다.(17항)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다양한 영적 선물과 은사들을 보내주셨다.(18항) 사도들은 이런 성령의 힘과 영적 선물을 통하여 질서를 갖췄다.

성경은 이른바 ‘예루살렘 공의회’(사도 15장, 갈라 2장)를 보도한다. 이 공의회는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교회 안에서 거행된 시노드들의 원형적 모습으로” 해석된다.(20항)

교부들과 고대 교회의 공동합의성

성경에 드러난 공동합의성 신학을 교부들이 전승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공동합의성은 처음부터 교회의 사도적 기원과 보편적 소명에 대한 창조적 충실성의 보증이며 구현으로서 전개” 되었다.(24항) 하지만 동시에 역사적 여정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됐다. 이미 2세기 초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다양한 지역 교회들이 “여정의 동반자”(25항)라고 성찰했다.

325년 첫 번째 보편 공의회인 니케아공의회에서는 보편교회의 권위 행사를 위해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그것은 ‘여러 교회 수장들의 조화, 로마 주교의 협력, 다른 총대주교들의 동의, 이전 공의회와의 일치’ (29항) 등이다.

이후 교회는 새로운 상황과 맥락에 처하며 새로운 주제를 성찰하게 됐다. 개신교 종교개혁과 그로 말미암은 트리엔트 공의회는 공동합의성의 발전에 큰 계기가 된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를 거치며 교회는 공동합의성에 대한 관습과 성찰을 발전시켰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아조르나멘토’라는 전망 안에서 수 세기에 걸친 관습과 실천을 통합시켰다.

공동합의성의 이해

공동합의적으로 운영되는 교회란 어떤 ‘팀’(team)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응급 의료팀’(야전병원), ‘사려 깊은 순례단’, ‘(영적)스포츠팀’ 등에 가까울 것 같다. 이 조직들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여정’이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구성원이 공동 목표에 참여해야만 한다. 또 지도자가 분명한 역할을 하며 모든 구성원과 소통해야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런 조직은 공동합의성을 실현하는 교회와 유사하다. 공동합의성을 실현하는 교회란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공동체 구성원 각자의 공통적ㆍ개별적 직무에 충실하며, 복음적 목표를 향하여 역사와 사회 안에서 제 역할을 기쁘게 실현하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동합의성은 교계제도를 약화하거나 변형하는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사제와 수도자와 평신도라는 신분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유한 책임성, 공동의 의무, 공동의 실천, 친교, 일치 등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그 점에서 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르침을 정통으로 계승하며,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가톨릭교회의 고유한 질서를 발전시키고 강화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정리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가톨릭신문 2022-11-0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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