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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쉬운 믿을 교리] 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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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획홍보분과 작성일22-09-28 16:49 조회3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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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밀림지대에 파견된 어느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소속되어 있던 부대는 전멸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도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6개월 뒤 그 병사는 혈혈단신으로 밀림을 헤쳐 나와 구조되었습니다. 그를 발견했던 사람들은 그의 손에 꼭 쥐고 있던 지도를 보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그는 밀림의 지도를 지니고 있어서 살아난 거야!’ 하지만 그가 펼쳐 보인 종이는 밀림이 아닌 런던의 지하철 지도였습니다.

보상이 없다면 우리는 아주 작은 고통도 감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겪어내야 하는 고통에 비해 보상이 부족하다 느끼면 자기가 자기에게 보상을 줍니다. 시험 끝난 아이들은 게임을 하고 직장에서 퇴근하고는 술 한잔합니다. 이런 보상이 계속 따라주지 않으면 사람은 번아웃(burnout·탈진) 되어 쓰러집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고통에 대한 보상을 약속하십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르 9,14)

삶의 질은 내가 받는 고통을 기쁘게 이겨낼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결정됩니다.

우리가 고통을 참아낼 수 있는 능력을 ‘만족 지연 능력’이라고 합니다. ‘마시멜로 실험’에서 마시멜로를 15분 동안 먹지 않으면 하나를 더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지킨 아이들이 성장해서도 질 좋은 삶을 살아감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사실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이 능력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무언가 참아냈을 때 그들에게 보상을 반드시 주었던 가정환경에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공로(meritum)'란 “행실에 대해 마땅히 주는 보상”(2006)을 받을 자격을 의미합니다. 공로가 성덕으로 이뤄졌다면 하느님께서 보상해 주십니다. ‘성덕’이란 “그리스도와 더욱더 밀접하게 결합되는 것”(2014)입니다. 그리스도와 결합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나를 죽이는 일입니다. “완덕의 길은 십자가를 거쳐 가는 길입니다. 자아 포기와 영적 싸움 없이는 성덕도 있을 수 없습니다.”(2015)


따라서 하느님 나라에는 성덕과 공로에 있어서는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에도 큰 사람이 있고 작은 사람이 있음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1,11; 5,19 참조) 물론 성덕과 공로는 하느님 은총의 힘으로 이뤄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로가 되고 성덕이 되는 이유는 자기 자유의지로 그 은총을 잘 활용하였기 때문입니다.(2008 참조) “공로는 정의의 덕과 관계되며 정의의 원리인 공평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모 마리아나 사도들, 순교자들과 똑같이 대우해 달라는 것은 정의에 어긋납니다. 그만한 대우를 받으려면 그만한 성덕과 공로를 쌓기 위해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모든 성덕과 공로가 다른 사람을 똑같이 대우해주는 것이 자비라고 여기지 맙시다. 정의 없는 자비는 무분별함이고 어리석음입니다. 성덕과 공로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보상 없이 이겨낼 수 있는 고통은 없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여러분도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하십시오.”(1코린 9,24)
 


 

가톨릭신문 2022-09-28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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