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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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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획홍보분과 작성일22-08-03 12:08 조회3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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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기도의 흐름 (1)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도 흐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기도에도 흐름이 있을까요? 기도에도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을까요? 그것을 위해 우리는 먼저 우리의 대화가 진행되어 가는 방식을 떠올려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초면인 어떤 두 분이 서로 만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그들 사이에는 서먹함이 있기 때문에, 보통 날씨나 뉴스 등의 가벼운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서먹함이 좀 가셔지면, 그때부터는 대화하기가 훨씬 쉬워지고 힘도 덜 들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평상시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올 수 있습니다.

 

기도의 여정도 이와 같습니다. 기도를 시작하려 할 때에는 기도에 깊이 들어가기가 어렵지만, 점차 기도 속으로 들어가기가 편해지고 수월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집에서 나와 기도하러 성당 좌석에 처음 앉았다고 생각해 보면, 곧바로 기도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떠오르는 생각들과 ‘싸워야’ 합니다. 왠지 집에 전등이나 히터 등을 켜놓고 와서 다시 가야만 할 것 같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중요한 일과나 할 일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하며, 지금 가만히 앉아 기도하는 것보다 차라리 다른 일을 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각들이 올라오더라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이것들을 내려놓기 위해 노력하며 계속해서 머무르다 보면, 어느 순간 그러한 지루함이 사라질 때가 오고, 기도하기가 훨씬 쉬워지고 힘도 덜 들게 됩니다. 이제는 처음에 기도하기 위해 썼던 힘을 덜 사용해도 되며, 아주 작은 힘을 들이더라도 기도에 깊이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기도의 여정은, ‘처음에는 내 힘’으로, ‘점점 주님의 힘’으로 즉, ‘능동(우리 노력이 들어감)’에서 ‘수동(하느님이 이끌어주심)’으로 나아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능동’은 주님이 우리에게 오실 길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수동’은 그 길 위로 주님이 걸어오시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능동’이 없으면(우리의 노력이 없으면) 주님이 ‘수동’해 주실 수가(주님이 끌어주실 수가) 없고, 우리가 ‘능동’ 하기에 주님이 ‘수동’ 하실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능동’과 ‘수동’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기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잘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기도하는 과정 중에 여러 가지 어려움과 노력이 따르더라도 기도하기를 중단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림시기의 의미도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기다리면 응답해 주신다.”

“그분은 때가 차면 오신다.”

“그분은 ‘능동’ 하면 ‘수동’해 주신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기도 중에 아직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있습니까? 아울러, 혹시 여러분은 요즘 기도하기가 여러 가지 이유로 힘이 들어 지쳐있지는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기도하시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 즉 인내와 기다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기가 어려워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그러한 우리를 반드시 찾아와 주실 것입니다. 기도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언제든 다시 새롭게 시작하면 됩니다. 기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자체로, 우리는 이미 우리의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최고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기도에 다시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2021년 12월 19일 대림 제4주일 인천주보 3면, 송기철 이사악 신부(인천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지도)]

 

 

[빛과 소금] 기도의 흐름 (2)

 

 

지난주에 저희는 기도의 흐름이 ‘처음에는 내 힘’에서 ‘점점 주님의 힘’으로 나아간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기가 어려울 때에도 기도를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그것의 연장으로서, 이러한 기도의 흐름을 교회 신비가들은 어떻게 풀이하고 설명하려 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기도가 ‘능동’에서 ‘수동’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설명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예를 드는 비유는 예수의 성녀 데레사(아빌라의 대大 데레사: 1515~1582)의 비유입니다. 성녀는 우리의 영혼을 궁전과 성(城)에 비유하면서 기도의 흐름은 일곱 겹으로 이루어진 성의 가장 내밀한 중심에 밖에서부터 안으로 서서히 도달하는 길로 보았습니다. 가장 밖에 있는 첫 번째 문은 1궁방이고 하느님이 거하시는 가장 깊은 속에 있는 마지막 일곱 번째 문은 7궁방인데, 3궁방까지는 인간의 노력(수덕)으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라 ‘능동적 단계’에 해당하고, 4궁방부터는 오직 하느님이 허락해 주셔야 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서 ‘수동적(신비적) 단계’에 해당합니다. 영혼(보통 인간 전체를 총칭하는 표현)은 1궁방에서 7궁방으로 나아가면서 ‘정화’와 ‘조명’의 길을 걸으며 결국 하느님과의 합일(영적 결혼, 일치)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성녀는, 자신의 자서전 『천주 자비의 글』에서 이러한 흐름을 정원지기가 자기 ‘영혼의 정원’에 물을 주는 모습으로 설명했습니다(11-22장). 정원지기는 자기 주인(하느님)이 언제라도 정원에서 편안히 거니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정원까지 물을 대는 방식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로 그는 우물에 직접 두레박을 내려 그 물을 정원까지 나르는 방식을 씁니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은 다소 느릴뿐더러, 인간의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다음으로 그는 손으로 두레박을 내리지 않고 도르래를 설치해서 내리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 방식은 이전 방식보다 훨씬 힘이 덜 들었지만, 도르래를 돌려야 하는 등 여전히 적잖은 수고로움이 있었습니다. 그가 사용한 세 번째 방식은 저 멀리 강가에서 정원으로 직접 수로를 설치하여 강의 물을 끌어들이는 방식이었습니다. 이제는 손으로 살짝 스위치만 돌리면 강의 수문이 열려 전혀 힘들이지 않고 엄청나게 많은 물을 정원에 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네 번째 방식은 정원지기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번에는 하늘에서 아예 비가 내린 것입니다. 하늘이 알아서 비를 내려주었기 때문에 정원지기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요즘 무엇을 바라시며, 그 바람을 주님께서 얼마나 이루어 주셨습니까? 그 정도가 현재 어떠하든 언젠가 하느님은 우리의 바람과 소원을 당신 섭리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것도 흡족히, 우리가 전혀 조금도 아쉬울 것이 없을 만큼 ‘비처럼’ 내려주실 것입니다. 언젠가, 분명히 다가올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 만큼 오늘도 주님을 향한 길을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오늘 여러분과 함께 살펴본 비유들 속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한결같이 했던 행위는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다림 끝에 주님이 서 계셨습니다. 우리도 기다리면 좋겠습니다. 연약한 나를, 가족을, 형제자매를, 공동체를, 이웃을, 세상을. 그러면 그 끝에 주님이 서 계실 것입니다.

 

 [2022년 1월 2일 주님 공현 대축일 인천주보 3면, 송기철 이사악 신부(인천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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