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리 수녀의 아름다운 노년 생활] 내면의 평화와 균형을 이루는 노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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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획홍보분과 작성일23-07-28 19:01 조회35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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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거리는 교통이 혼잡하여 차로 이동하게 될 때 도착 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워 주로 전철을 이용하게 됩니다. 외부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무더워 시원한 물을 사려고 가방을 살펴보다가 지갑을 챙겨오지 않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지친 마음을 추스르며 전철에서 내렸습니다. 출구를 확인하느라 주변을 살피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수녀님~ 수녀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앞치마를 두른 어르신이 검은색 비닐 봉투를 들고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저를 부르신 건가요?”하고 물으니 “아이고, 그렇다니까요”하면서 숨을 고르고 계시는 어르신을 보면서 속으로 ‘물건을 사달라고 하면 어쩌지? 지갑에는 교통카드밖에 없는데…’라는 복잡한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죄송해요. 제가 교통카드밖에 없어서 도움을 드릴 수 없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인사하고 돌아서려는데 어르신이 제 손에 떡과 물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쥐여주고는 묵주를 들어 올리며 말씀하셨습니다.
“수녀님, 저는 데레사예요.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전철에서 내리는 수녀님의 얼굴이 무척 창백해 보여서 시원한 물과 떡을 드리려고 달려왔어요. 저는 전철 앞 컨테이너에서 장애인 조카를 도와 잡다한 물건을 팔고 있는데, 돈을 버는 것 보다 오고 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있어요. 떡을 팔려면 매일 새벽 5시에 떡집에서 떡을 찾아와서 포장을 해야 해요. 레지나 자매가 본인 차로 찾아다 주면, 아녜스 자매가 와서 떡 포장하는 일을 도와주고 있어요. 가족처럼 생각하고 한결같이 도와주는 성당 자매님들 덕분에 80살이 넘어도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저도 작게나마 누군가를 돕고 싶어서 판매 수익의 10를 기부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인생이 재미있어지고, 허드렛일이 특별한 삶의 의미로 다가와서 젊은 날에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을 요즘 느끼면서 살고 있어요. 아이고, 제가 말이 길어졌네요. 손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저는 이만 갑니다.”
손을 흔들고 바삐 가시는 어르신의 뒷모습을 보며 선입견을 가졌던 잠깐의 생각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세상에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고 느껴져 위안과 함께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고 즐겁게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만 정작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노년의 행복은 일상적이고 매일 반복되는 삶 안에 있기에 ‘선택과 집중’의 관점에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같은 행동양식일지라도 어제와 오늘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하루하루가 특별한 나날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삶 안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침대에서 한쪽 방향으로만 돌기 때문에 낙상을 경험하게 되고 이를 통해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균형감각을 익힙니다.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은 노화된 신체가 아니라, 신체적 한계를 염려하여 균형을 시도하지 않고 안주하려는 사고방식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노년기에는 더욱 내면의 평화와 균형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소박하고 가벼워지는 삶을 추구하며 삶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손실을 받아들일 때 노년은 아래로, 안으로 깊어질 것이며 누군가의 쉼터가 되어주는 아름다운 노년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아름다운 노년생활’ 글을 쓰면서 노년에 대한 묵상과 성찰을 통해 한 걸음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화나 메일로 글을 공감해 주시고 희망찬 노년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씀해 주시는 전국에 계신 가톨릭평화신문 애독자 여러분 덕분에 7개월의 여정이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아름다운 노년’을 살아가고 있고 또 준비하고 계신 모든 분을 위해 기도로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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