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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하나]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 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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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획홍보분과 작성일22-11-23 07:41 조회4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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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때부터 기도할 때면 늘 함께 따라다니는 것이 분심입니다. 묵주기도를 할 때도 성무일도를 할 때도 그리고 심지어 미사를 봉헌할 때도 분심이라는 녀석은 그렇게도 집요합니다. 기고했던 네 번째 글에서 대 데레사 성녀의 기도를 이야기하며, ‘주님께 나아감에 있어 아무것도 나를 혼란케 하지 않기를 소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바라는 그 순간에도 분심은 늘 함께입니다. 그래서 분심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찰나의 기쁜 순간에도 분심은 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니 말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글에서 말씀드렸던 ‘오소서 성령님’이라는 기도를 자주 바치곤 합니다. 늘 말이지요. 기도하며 분심이 드는 그 공간을 성령 청원기도로 채우곤 합니다. 분심 드는 것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곳을 다른 기도로 채우자는 생각이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성령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암송하며 다른 기도를 바치면 다른 생각이 훨씬 덜 드는 것 같습니다. 워낙 멀티 플레이어가 아니어서 본기도와 더불어 보조로 하는 기도만으로도 다른 생각이 들 여지가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내가 몰아세우기만 하던 분심이 그렇게 나쁜 것인가’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에 다른 쪽으로 의식의 방향이 향하는 것을 바르다고 할 수 없지만, 분심이라는 존재가 그렇게도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하느님께 나아감을 방해하기 위함일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혹시나 나를 도와주기 위함은 아닐까’라고 말이지요. 분심 덕분에 본기도와 함께 보조 기도를 하게 되면서 더 기도에 집중할 방법을 터득한 것 역시도 제게는 큰 선물이었으니까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 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에 대해 질문을 할 때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세에 관련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나는 지금 마음과 목숨과 정신 그리고 힘을 다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혹시 분심이라 명명된 현상은 내가 다 쓰고 있지 못한 나의 능력을 활용하라는 신호가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더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는 이미 우리의 능력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익혀왔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글을 읽을 때 소리 내어 읽거나, 쓰면서 무엇인가를 암기하는 것과 같은 기술이 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의 현상을 다양한 방법으로 익힐 때, 자연스럽게 많은 감각을 동원할 때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분심이라 불렸던 그것은 다 활용하지 못한 능력을 활용하라는 알림이었던 것입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도움이 되고 안 되고를 판단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순간적인 판단이나 생각이 가능성을 한계 짓거나 다른 이와의 조화를 방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분심’이 깨닫게 해준 소중한 감각을 잃지 않아 보려 합니다.
 

김영주 니코메디아의 베드로 신부
제1대리구 서천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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