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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기를란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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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획홍보분과 작성일23-03-27 17:32 조회3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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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의 미술관 [최후의 만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jo, 1449-1494), 1480프레스코화, 400×800산 마르코 수도원(이탈리아 피렌체).3b2afb2ceaab84ac4af2a1d95fa4a8d7_1679905895_2147.png

르네상스 초기의 화가로 보티첼리나 필리피노 리피 등의 거장에 가려져 그 재능을 뒤늦게 인정받은 사람이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jo, 1449-1494)이다그는 주로 프레스코화를 그렸으나그의 사실적이고 세밀한 기법시류에 민감한 풍속화적 성향은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하던 다른 거장들의 그늘에 가려졌다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그의 작품이 지닌 사실성의 특성을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20세기 중반이 지나면서 그의 독창적 필치를 인정받음으로써 15세기 피렌체의 으뜸가는 화가로 명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의 화가 수업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다만 그의 아버지가 금은세공사로아버지의 가게에서 도제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기를란다요곧 꽃장식가라는 별명도 이때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이 별명이 보여주듯 사실성과 세밀함을 기반으로 한 그의 독자적인 화풍이 유감없이 드러난 작품이 최후의 만찬이다.

 

최후의 만찬은 복음의 주요 주제로 역대의 많은 화가들이 다루었으며특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것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그런데 기를란다요의 작품은 여러 면에서 동적 구조를 지닌 다 빈치의 것과 큰 대조를 보인다기를란다요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정돈된 실내 분위기에 안정된 구도와 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언뜻 보면 아주 성스런 순간을 그린 것 같은데기를란다요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도록 이끄는 많은 상징성을 주입시켜 놓았다.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곳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의 식당이다피렌체의 지도자 가문이었던 메디치 가문이 희사한 건축자금으로 지어졌으며화성(畵聖)으로 부르는 프라 안젤리코가 한때 원장으로 봉직했던 이 수도원은 당시 피렌체 사람들에게 신앙과 예술의 조화에 심취할 수 있는 각별한 공간이었다이 공간의 식당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은 미사 때뿐 아니라 식사시간에도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내 피의 잔이다.” 하는 성찬축성을 기억하고늘 예수님과 최후의 만찬을 함께하는 감격을 느끼며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 것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일상적인 벽화 형식으로 긴 식탁에 일직선으로 앉은 제자들이 있고그 위로 하늘에 새들이 나는 풍경이 보이는 2중적인 구조로 되어있다그런데 그 제자들의 모습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는 달리 여유롭고 풍부한 재력을 가진 사람들로 보인다이는 이 제자들의 모델이 그 당시 피렌체의 정신적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이다이유는 최후의 만찬이라는 성경의 사건은 신앙의 사건일 뿐 아니라 늘 우리의 마음에 재현되어야 할 오늘의 사건임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주님과 제자들이 함께한 고급 식탁과 그 위의 포도주와 잔집기류음식 등이 전혀 소홀함 없이 정돈되어 준비된 것이 완벽하게 보인다이 자리가 주님을 우리에게 주시는 자리이기에 그 성스러움을 이렇게 완전한 모습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깔끔한 식탁의 중앙에 만찬의 주인공 예수님이 있다정황으로 보아 예수님은 지금 막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고이 말씀에 대해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던 그 순간의 표정을 보이고 있다예수님의 왼편에는 어깨에 기댄 이가 있는데그는 베드로의 고갯짓에 예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 주님그가 누구입니까?”라고 묻는 요한이다그는 주님께서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요한 13,21-26)라는 말씀에 너무 놀라 그분의 가슴에 쓰러지고 있다.

 

바로 그 사람은 다른 제자들과 달리 식탁 앞으로 나와 앉은 사람으로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아넘김으로써 신앙공동체에서 쫓겨난 유다이다그래서 그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나란히 할 수 없기에 다른 편에 홀로 앉아있으며머리 뒤에 성인의 후광도 없다.

 

지금 이 유다가 주님이 주시는 빵을 받으려 오른손을 뻗고 있다그런데 빵을 내미는 주님의 손은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축복의 손인 반면그 빵을 받는 유다의 손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고 신앙을 버리는 죽음의 손이 아닌가그의 뒤쪽 바닥에 앉은 고양이는 그 속성상 배반의 상징인데한편 유다의 속마음을 상징하지만다른 한편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언제나 변할 수 있는 우리 마음의 신앙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그림의 오른쪽 끝에는 주님의 말씀에 너무 놀라 주님저는 아니지요?”라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제자 필립보의 인간적인 모습이 보인다그 왼편의 식탁을 응시하는 제자는 손을 내린 채 이미 이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다는 듯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필립보의 손이 나약한 인간의 신앙에 대한 증거라면다른 제자의 손은 주님의 제사에 동참할 강한 의지의 손이다곧 그의 포개진 두 손은 포도주 병에 가려졌는데그 포도주가 우리에게 주실 주님의 피를 의미하는 만큼 주님의 사랑에 목숨을 걸고 보답하겠다는 조용하면서도 결연한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베드로이다지금 그는 배반의 음모를 듣고는주님에 대한 변치 않는 믿음을 약조한다는 믿지 못할’ 각오에 들떠 눈을 부릅뜨고 오른손에 칼을 움켜쥐고 있다그 옆의 제자는 포도주 잔을 이미 비웠다.

 

이는 주님이 주신 잔을 받아 마심으로써 주님과 한뜻으로 주님의 길을 동반하겠다는 마음의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그리고 그의 빈 잔 바닥의 남은 포도주는 붉고 둥근 모습인데이는 이 제자가 주님과 함께하면서 써야 할 순교의 월계관을 암시한다.

 

그리고 식탁에는 버찌들이 늘어져 있는데이 버찌는 한편 십자가에서 주님이 흘려야 할 수난의 피이며다른 한편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는 천국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이 둘의 모습은 그림 상단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는데벽 가운데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과 창을 통해 보이는 정원의 모습들이 그것이다.

 

하늘의 모습을 보면 오른편에 식탁의 제자들을 응시하는 공작새가 있다이는 불멸의 상징으로예수께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7,58) 하신 말을 상기시킨다공작새 앞의 비둘기 세 마리는 성령으로이런 믿음을 증언하시는 하느님을 상징한다비둘기의 모습이 아직 어린 것은 더욱 성숙해야 할 우리 믿음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공중을 나는 꿩은 부활을 의미하며매는 밀밭에 둥지를 틀기에 믿음의 상징이고검은 방울새는 가시덩굴에 둥지를 마련한다는 뜻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다름이 아니다이런 수난과 믿음과 부활의 여정은 곧 하느님의 섭리이며하느님의 나라로 가고자 겪어야 하는 과정임을 창밖의 세상천국의 이미지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식당의 벽면을 장식한 이 최후의 만찬은 수도자들에게 강한 신앙과 앞서 경험하는 천국의 모습으로 다가왔을 것이며일반 관객들에게는 현세에서 느끼는 천국의 아름다운 모습곧 내가 가야 할 그곳을 위해 신앙과 믿음의 정열을 다지는 마음의 성소였을 것이다.

 

권용준 안토니오 문학박사한국디지털대학교 교수이며미술비평가다저서로 명화로 읽는 서양미술사”(북하우스)와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살림)이 있다.


권용준 안토니오(한국디지털대학교 교수)

[경향잡지, 200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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