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르코 유해의 피신(틴토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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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획홍보분과 작성일23-10-31 09:55 조회52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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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미술관 [성 마르코 유해의 피신]
틴토레토(Tintoretto, 1518-1594년), 1562-66년, 캔버스 위에 유채, 315×398㎝, 갤러리아 델 아카데미아(이탈리아 베네치아)
틴토레토(1518-1594년)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화려한 색채를 중시한 베네치아 화파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오늘날 베네치아의 중요한 유적은 산 마르코 성당이다. 이 성당에 모셔진 마르코 성인은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으로 오늘날에도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경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틴토레토는 이 도시의 수호성인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성 마르코 유해의 피신’이다. 마르코 성인의 일생에 대해 자세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복음사가로서 마르코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설립하였으며, 두 번째 방문 때 그곳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이 그림의 이야기는 이렇다. 중세의 베네치아는 강력한 힘을 자랑하던 도시국가였으나, 그 도시의 수호성인인 성 마르코의 유해를 모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안가 사라센의 통치자가 알렉산드리아에 거창한 이슬람 성전을 짓도록 명했다. 그는 물자가 모자라자, 이집트에 있는 성당의 기둥을 뽑아 쓰도록 하였다. 그 성당은 성 마르코의 유해를 보관한 곳으로,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교회의 성직자들에게 성인의 유해를 가져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였다. 이집트에서 성인의 유해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기에 그 유해를 당장 옮겨야 했던 것이다. 이때 성당의 지하묘지에서 성인의 유해를 찾는데, 마르코 성인이 현시하여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고 한다. 그 상황을 묘사한 그림이 틴토레토의 ‘성 마르코 유해의 발견’이다.
성인의 유해를 옮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면서도 숙명적인 일이기에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했다. 우선 이집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눈을 피하려고 성인의 유해를 다른 사람의 시신으로 위장하고, 또 세관원들의 눈을 속이고자 유해의 가슴 부분에 사라센 사람들뿐 아니라 유대인들도 혐오하는 햄과 돼지고기를 넣었다. 유해의 가슴을 열어젖힌 항구 세관원은 그 속의 햄과 돼지고기를 보고 혐오감에 치를 떨며 얼굴을 돌리고는 그 시신을 당장 배에 실을 것을 명했다. 이렇게 해서 성인의 유해는 별 탈 없이 배에 오르고 베네치아를 향해 무난한 항해를 할 수 있었다. 서기 827년의 일이다.
일설에 따르면, 베네치아 상인들이 유해를 옮기던 중 하늘에서 갑자기 몰아친 천둥과 번개, 폭풍우가 거리에 들끓던 사람들을 모두 사라지게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성인의 유해는 아무런 방해나 장애도 없이 무사히 배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틴토레토가 그린 것이 바로 하늘의 승낙이 있던 성스런 순간이다.
이 그림의 구도는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3명의 베네치아 사람들이 마르코 성인의 시신을 들어 옮기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이 시신을 운반하는 낙타를 저지하려다 땅바닥에 엎어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천둥과 폭풍우의 조짐이 두려워 아케이드로 몸을 피하려고 줄달음질 치고 있다.
그림 속에서 유일하게 환하게 빛나는 성인 모습, 그 건장하고 멋진 모습이 마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또는 매장 순간의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보인다.
순교 당시의 처참한 모습과 달리 표현된 것은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성인의 고상하고 고결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림 속 배경 또한 알렉산드리아가 아니라 베네치아이다. 이 도시의 대표적인 광장이며 웅장하고 멋진 자태를 자랑하는 산 마르코 광장과 매우 유사하다. 그림의 종탑 역시 산 마르코 성당의 종탑 모습이다. 틴토레토는 역사나 지리적 사실과는 상관없이 이 그림에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기념물을 배경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성인의 머리 왼쪽으로 위엄을 지닌 성인의 자태를 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그림의 의뢰인으로 당시 베네치아의 명망있는 의사이자 예술 후원인이었던 토마소 기아노티이다.
그리고 그림 곳곳에 연기 같은 흰 선이 나타나 있다. 당시 이 그림을 판화로 제작한 것을 보면 성인의 영혼이 투명한 흰색으로 천사들의 머리에 둘러싸여 부유하고 있는데, 이로 미루어 이 흰색 선들은 바로 성 마르코의 영혼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림의 뒤쪽 교회 앞에는 장적더미가 보이는데, 관례적으로 그리스도교인들은 성인을 매장했으나, 이교도들은 불에 태웠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실제 이 장적더미는 그림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만들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였다면 불에 태웠을 것을 베네치아에서 벌어진 일, 곧 성인의 매장과 병치시킨 것인데, 이처럼 어떤 동일한 사건을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 여러 형상으로 병합시키는 것은 일종의 꿈과 환상이다. 틴토레토는 지금 꿈을 기록한 것이다. 이런 몽환적 인상은 그림의 배경에 나타난 천둥과 번개의 비현실적 형상을 통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인의 육신은 밝게 빛나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둠과 그림자에 싸여 모호하게 표현되어 현실성을 잃고 있다. 참다운 존재로서의 그리스도교인에 반해, 왼쪽 아케이드로 도망해 들어가는 이교도들은 창백한 유령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그림 하단에서 교회를 향해 뻗은 일렬로 늘어선 석판 경계선이 그리스도교인과 이교도들의 다른 운명을 암시하는 것 같다. 낙타의 줄을 잡은 채 나뒹구는 이교도는 절대 그 경계선을 넘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석판들은 그림에 원근의 깊이감을 주는 효과를 발하기도 하는데, 이 원근법이 인간 세계를 사실적으로 표현한다는 르네상스 회화의 일면이다. 그러나 지금 틴토레토는 사실과 현실에 입각한 르네상스 이상을 온전하게 따르지 않고 있다. 병치된 꿈의 형상과 마찬가지로 양감과 무게감이라는 현실성을 잃은 채 언제라도 바람에 쓰러질 듯 불안한 연극무대 같은 건물, 확실하고 구체적인 모습을 잃은 채 더 이상 르네상스의 이상인 숭고한 아름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한 인간의 모습들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불확실한 형상 가운데에서도 확실한 존재가 하나 있다. 그림 속의 모든 존재는 움직이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교도들은 모두 왼쪽으로 내달리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그림의 전면을 향해 서둘러 움직이고 있다. 다만 성인의 유해만이 구체적이면서도 분주함에 아랑곳하지 않는 고요한 형상, 빛이 어울린 아름다운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는 16세기 이탈리아를 휩쓴 종교적이며 정치적 격동기에도 베네치아 사람들이 가장 믿고 신뢰하던 존재, 불멸의 영원한 존재가 바로 그들의 수호성인인 성 마르코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틴토레토는 당시 인간의 이성을 토대로 파악한 구체적인 세계를 오히려 모호하게 표현하고, 하느님의 섭리와 신앙이라는 모호한 관념을 구체적이고 아름다운 형상으로 묘사하면서, 유한한 인간 세상에 비해 하느님의 섭리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또한 믿음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은밀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르네상스의 이상을 따르면서도, 그 이상을 거부하면서 정신의 숭고함을 전한 매너리즘의 화풍이 펼쳐진 것이다.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경향잡지, 2006년 2월호]
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성 마르코 [성인의 시신을 빼돌리다]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인 성 마르코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가 알려져 있지 않다. 전해지는 자료에 의하면 그는 베드로 성인에 의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사도행전은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다가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나와 간 곳이 바로 마르코의 집이라며 “마르코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베드로가 바깥문을 두드리자 로데라는 하녀가 누구인지 보려고 문으로 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초기 공동체 시절에는 아직 교회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밀리에 가정집에 모여서 집회를 가졌는데 집회를 제공한 주인은 많은 신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가 큰 저택을 소유한 귀족인 경우가 많았다.
위의 성경 말씀으로 미루어 보건대 마르코의 집 역시 집회를 제공한 집이었고, 하녀도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마르코는 귀족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오로의 일차 선교 여행 때 마르코는 예루살렘에서 안티오키아를 거쳐 키프로스 섬까지 바오로를 동행했다고 한다.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가 마르코를 알렉산드리아로 보냈으며 거기서 주교가 되었다. 부활절 미사를 드리던 중 마르코는 이교도들의 습격을 받고 붙잡혔는데 이들은 주교인 마르코의 목에 밧줄을 걸어서 성인을 거리에서 끌고 다녔으며, 이튿날 같은 일을 되풀이 했고, 성인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낭자하여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이교도들이 시신을 불태우려 하자 천둥과 번개가 쳤고, 사람들은 시신을 방치한 채 도망치기에 급급했는데 그 틈을 타 신자들이 성인의 시신을 수습하여 교회에 모셨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에 모셔졌던 성인의 유해는 829년 베네치아의 상인들에 의해 베네치아로 옮겨졌으며, 이를 기념하여 베네치아 사람들은 성인의 이름을 따 성 마르코 대성당을 짓고 그곳에 유해를 보존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마르코 성인이 대중적 인기를 누린 데에는 복음저자라는 사실 외에도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라는 사실이 큰 몫을 했다. 베네치아에서 마르코 성인은 특별한 공경을 받았으며, 성 마르코 대성당이 도시의 수호성인 성 마르코께 헌정된 것을 비롯하여 베네치아 곳곳에서는 복음저자 성 마르코를 상징하는 사자상을 흔히 볼 수 있다. 과거 베네치아 상인들은 긴 여행을 떠나면서 성 마르코께 무사안일을 기원했고, 돌아와서도 안전한 여행과 도시의 번영을 이룩해준 것에 대해 감사드렸다.
성 마르코의 생애를 그림으로 보여준 화가는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화가 중의 한 사람인 틴토레토(Tintoretto, 본명 야코포 로부스티 Jacopo Robusti, 1518∼1594)이다.
이 그림의 배경은 성 마르코가 생존했던 고대 로마시대가 아니라 화가가 살았던 16세기 중반 베네치아의 모습이다. 성인의 시신을 불태우기 위해 쌓여진 장작더미가 광장 한복판에 놓여져 있고,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자 사람들이 모두 건물 안으로 피신하고 있는 사이에 신자들이 성인의 시신을 구출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성인의 몸은 발가벗겨진 채 사람들에 의해 옮겨지고 있는데, 후기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답게 인물들의 동작이 역동적으로 표현되었고, 인체의 단축법이 강조되었으며, 누드로 표현된 성인의 모습은 당시 화가들이 인체묘사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색채와 빛의 대가였던 틴토레토답게 이 작품은 갈색과 먹구름으로 표현된 검은색 그리고 건물을 표현한 흰색 정도의 색채만을 사용했으나 성인의 최후의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보여주고 있다.
고종희(한양여대 교수)
[가톨릭신문, 2010년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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