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브뢰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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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획홍보분과 작성일23-10-30 21:59 조회37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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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미술관 [바벨탑]
피테르 브뢰겔(Bruegel the Elder, Pieter, 1525-1569년), 1563년, 패널 위에 유화, 155×114㎝, 빈 미술사 박물관(독일).
피테르 브뢰겔(Bruegel the Elder, Pieter, 1525-1569년)은 16세기 플랑드르의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하나로, 흔히 최초의 농민 화가 또는 ‘농민 브뢰겔’로 부르는 인물이다. 그만큼 그는 숙명적으로 대지와 인연을 맺고 우직하게 살아가는 농민들의 삶에서 진실한 휴머니즘을 발견하고 사회에 대한 예리한 비판의 붓을 들었던 것이다.
이런 그가 인간의 오만한 욕망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바벨탑’이라는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바벨탑은 구약성경 창세기 제11장에 나오는 벽돌로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도록” 쌓아올렸다는 미완의 탑으로, 하느님 앞에 오만한 인간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인류역사의 초기, 곧 대홍수의 심판이 있은 뒤 노아의 후손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세우기로 하였다. 사방에 자기들의 이름을 떨치고 홍수와 같은 주님의 무서운 심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함이었다. 이미 주님께서 무지개를 징표로 삼아 물로는 더 이상 심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음에도, 인간들은 주님께 대한 불신으로 탑을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본 주님께서는 이런 욕망과 허영에 들뜬 인간의 행위와 일을 괘씸하게 여겨 탑을 건축하는 사람들의 말을 뒤섞어놓아 이들을 멀리 흩어지게 하셨다. 이로써 도시와 탑을 세우려는 인간들의 의도는 멈추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 지명을 바벨이라 했는데,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땅의 말을 뒤섞어놓으시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버리셨기 때문이다.”(창세 11,9).
이 그림의 특징은 높이 114cm의 캔버스에 그려진 거대한 건축물과 그 세부의 세밀한 묘사가 융합되었다는 것이다. 창세기에는 바벨탑이 ‘신아르 지방의 한 벌판’에 세워졌다고 되어있으나, 브뢰겔은 이 바벨탑을 자신이 활동하던 벨기에 앤트워프의 바닷가에 우뚝 솟은 돌산 위에 형상화했다. 16세기의 앤트워프는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로, 국제 상업과 무역이 중심지였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 다른 언어와 의상, 습관 등 풍습이 혼합된 곳이었다. 이는 마치 주님께서 벌하신 바벨의 혼동된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건축 붐과 더불어 융성한 상업도시의 면모를 그림 좌측에 빼곡이 들어선 건물이 대변하고 있다.
이 그림의 특색은 매우 세밀한 묘사인데, 그 묘사기법을 통해 브뢰겔은 탑의 우측 수평돌기 3단 위에 거대한 기중기를 표현하였다. 기중기의 앞쪽에 발로 밟아 돌리는 바퀴 안에는 세 사람이 들어가 있는데, 이렇게 고안된 기계로 건설인부들은 그들 자신들보다 훨씬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들은 이미 일정하게 자른 돌을 들어 올리고 있으며, 발코니에 있는 한 남자가 들어 올려지는 돌이 부벽에 부딪히는 것을 막으려고 막대로 애써 로프를 밀고 있다.
이 기중기는 당시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려고 앤트워프에 세운 것이다. 이 기중기 아래의 수평돌기에는 더 작은 종류의 기중기와 권양기도 몇 대 그려져 있다. 특히 수평돌기 곳곳에 세워진 건설지부와 같은 헛간과 작업용 비계가 건설현장의 요란한 작업소리, 오만한 인간의 함성을 대신하고 있지 않은가? 탑의 내부통로와 아치, 계단들은 로마에 있는 콜로세움과 같은 원형극장 등 고대 유적을 연상시킨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크기에 맞게 돌을 자르는 석공들의 모습이 보인다. 석공들은 건축 노동자들의 서열에서 지위가 가장 높았던 사람들로, 현장에서 작업을 감독하던 사람들도 석공이었다. 이들 석공 가운데 하나가 무릎을 꿇고 왕관과 왕홀을 지닌 누군가에게 경배를 드리고 있다. 바로 노아의 후손이자 대홍수 이후 인류 역사상 최초의 강력한 군주로 바벨탑 건설을 명령했다고 전해지는 니므롯 왕이다. 그가 지금 이 순간 왕림하여 건설 현장을 순시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왕이 보이는 절대적 권위가 곧 주님에 대한 도전을 시사한다. 바로 하느님을 거역하는 인간의 오만함이다. 그 하느님을 능가하고 자신들의 헛된 욕망을 채우려는 의도에서 이들은 결국 기중기와 같은 기계를 고안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 지상의 힘과 권력의 욕망에 일침을 가하듯 미완의 탑 상층에는 구름이 드리워있다. 바로 전능하신 하느님의 막강한 힘의 상징이다. 구름은 안개와 더불어 모호한 앞날과 죽음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가?
이처럼 이 그림 속에 표현된 세속적인 현상과 그 주제는 인간 행위에 대한 도덕적 사유를 나타내고 있다. 곧 해안과 도시, 작업장 등의 경관과 배, 건설인부들과 건축기술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일상의 이미지들은 날마다 인간이 행하는 도덕의 위상을 보이지만, 구름을 뚫고 올라간 탑과 왕에게 경의를 표하는 석공의 몸짓 그리고 인간이 이성으로 고안한 기중기는 날마다 지켜야 할 도덕의 한계를 능가한 오만함, 허영 그리고 과대망상에 대한 직접적인 메시지인 것이다.
이런 인간의 오만한 욕망은 비록 미완이지만 그 결과물로서의 바벨탑의 세로축이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곧 인간의 허영과 허무에 들뜬 행위를 호되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미완의 바벨탑은 그 밑의 도시를 눌러버릴 듯한 기세이지만, 하느님의 섭리 아래 인간은 거대한 우주 속에 존재하는 작은 생명체일 뿐이라는 점이 부각되는 듯이 보이지 않는가? 브뢰겔이 전하는 이런 오만함에 대한 경고는 곧 하느님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믿음을 전제로 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현대조각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학석사를, 파리 3대학교(la Sorbonne Nouvelle)에서 아폴리네르의 예술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 “명화로 읽는 서양미술사”(북하우스)와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살림)이 있다.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경향잡지, 2006년 1월호]
말씀이 있는 그림 [바벨탑]
그림 전체를 거의 지배하고 있는 탑은 ‘바벨탑’이다. 창세기 기록에 따르면,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창세 11,4)고 했다. 이들은 단단히 구워낸 벽돌로 거대하고 높은 탑을 쌓아 올리려 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하늘에 닿으려 했던 사람들의 욕망을 일하는 사람들의 언어를 혼란시켜 소통을 못 하게 하심으로써 그 일을 막으셨다. 탑은 미완성으로 남았고 사람들은 온 땅에 뿔뿔이 흩어졌다.
이 탑을 바빌로니아에서는 밥일루(Bab-ilu, ‘신의 문’이란 뜻)라고 불렀는데, 히브리어로 바벨(Babel)이라 했다. 바빌로니아에서 자리를 잡은 수메르인들은 높은 산이나 언덕에 ‘지구라트’라는 탑을 올리면서 신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올 때 내디딜 발 받침대로 여겼다고 한다. 탑을 하늘과 지상을 통하는 출입구처럼 보았다. 바벨탑은 그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피터 브뤼헐(Pieter Bruegel de Oude, 1525경-1569)이 그린 바벨탑은 현재 두 점이 남아 있다. 두 점의 작품은 그 크기의 차이로 빈 미술사 박물관에 소장된 <큰 바벨탑>과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에 소장된 <작은 바벨탑>으로 구별된다. 두 바벨탑은 모두 고대를 배경으로 건설현장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브뤼헐은 당대 현실에 적합한 배경으로 탑 건설 자재를 수로를 이용하여 수송할 수 있는 연안을 부지로 택하였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바벨탑은 웅장하기 그지없다. 거대한 탑 뒤에는 당대 최대의 바빌론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왼쪽 아래에는 니므롯 왕이 신하를 거느리고 석수들의 작업현장을 지휘하고 있다. 왕의 발치에 한 석수가 양쪽 무릎을 꿇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럽에서 군주 앞에 백성이 한쪽 무릎만을 꿇는 것과는 달리 양쪽 무릎을 꿇고 있는 자세는 이 왕이 중동 출신임을 의미한다. 이 이야기가 동방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원추형의 바벨탑 내부 건축 구조는 로마의 콜로세움과 흡사하다. 그림을 보면 탑은 처음부터 수직으로 곧게 솟아 올려지지 않고 왼쪽으로 기울어진 채 쌓아 올려지고 있다. 기우뚱한 탑은 균형 감각을 잃고 있다. 그리고 공사는 선후관계가 바뀌어, 아래층이 완성되기도 전에 위층을 쌓아 올리고 있다. 이 공사가 실패로 돌아 가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결국, 화가는 탑은 무너지고 말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당시 플랑드르(Flandre) 지방은 외부적으로는 스페인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대립으로 정치·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다. 민중의 삶은 피폐해져만 갔고, 그들의 좌절감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브뤼헐이 보기에 당시 사회는 멸망 직전의 바빌론이나 로마와 닮아있었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끝없이 탑을 쌓아 올리며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탐욕과 욕망이 바빌론인이나 로마인들의 욕망과 다를 바가 없었다. 기울어진 탑처럼 사회는 균형 감각을 잃었고, 선후관계가 뒤바뀐 공사처럼 사회는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평화를 잃게 될 것이다. 욕망과 소유를 모두 버리지 않는 사람은 하늘의 탑을 결코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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