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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렘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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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획홍보분과 작성일23-10-17 20:42 조회1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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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문화와 영성  착한 사마리아인

 

렘브란트, 1633에칭(etching, 동판화), 26.5×21.2cm, 레이크스 박물관(Rijksmuseum)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렘브란트, 1930년대캔버스에 유화, 26×21cm, 월리스 컬렉션(Wallace Collection)영국 런던136063b14379679e5f5be4682cbe030d_1697542920_872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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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뒤따르는 것
즉 그분처럼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그것은 그분의 비전(vision), 정신가치를 살아가는 것이다예수님의 비전이 잘 표현되는 자리 중의 하나가 바로 그분의 비유 말씀이다이 비유 중에서 많이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이다렘브란트는 이 비유 말씀을 여러 차례에 걸쳐 동판화나 유화드로잉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스승님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 10,25) 어떤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한다이 율법 교사의 관심은 영원한 생명이다이것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그 대답을 구한다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은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이다이 점에서 예수님과 이 율법 교사의 생각은 같다그러자 율법 교사는 다시 질문한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이에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나게 된다.(루카 10,30)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사제와 레위인은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을 보고서도 그냥 지나가 버렸다사제와 레위인은 유다인 중에서도 종교적 엘리트들이다유다인들의 율법에 충실했던 그들에게 중요한 가치는 자신들의 제의적 정결을 유지하는 것이었다왜냐하면 초주검 당한 이가 죽어 있기라도 했다면 부정한 것과 결코 접촉해서는 안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그들에게 강도당한 이는 이웃이 아니라 배제와 분리의 대상이었다그들 사이에는 경계가 존재했다그것은 정결과 부정의 경계이다여기서 사제와 레위인은 개인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 영성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이를 보고서는가엾은 마음이 들었다그래서 사마리아인은 돌봄을 실천한다무엇이 그로 하여금 유다인과 사마리아인이라는 종족간지역간의 경계정결과 부정의 경계를 뛰어 넘어 배제와 분리가 아닌 돌봄과 배려를 실천하게 하였는가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는 동사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이다그리스어에서 이 동사는 사람의 창자내장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는데인간의 내면 깊숙이에서 불쌍한 마음이 드는 것속마음이 절절한 불쌍함으로 움직여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다양한 경계를 무효화하고 개인주의와 엘리트주의 영성의 배제와 분리를 넘어서 돌봄과 배려를 실천한 것은 강도만난 이와의 공감곧 함께 아파하기” 때문이었다그는 초주검 당한 이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루카 10,34-35) 이와 같이 사마리아인은 고통당하는 이와 연대한다그를 고통에서 해방하려 행동한다이 해방 실천은 기름포도주노새와 함께 하는 생태적 연대이고여관 주인과 함께 하는 사회적 연대이다.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분리와 배제를 뛰어 넘는 함께 아파하기의 길을 제시하신다곧 그분은 당시 유다인들의 정결의 정치학에 도전하시고 함께 아파하기의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을 대안으로 제시하신다그것은 경계들로 갈라진 사람들의 공동체를 회복하고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예수님의 정신과 가치가 살아 있는 자리이다.

 

● 렘브란트의 <착한 사마리아인>

 

렘브란트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해석하고 그린 여러 작품들 중에서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인>(The Good Samaritan)이라는 제목의 두 그림을 살펴보려 한다첫 번째 작품은 렘브란트가 1633년에 에칭(etching), 즉 동판화로 그린 것으로 26.5×21.2cm의 크기이며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레이크스 박물관(Rijksmuseum)에 소장되어 있다두 번째 작품은 1930년대에 캔버스에 그린 유화로 26×21cm의 크기이며영국 런던의 월리스 컬렉션(Wallace Collection)에 소장되어 있다이 두 번째 작품은 렘브란트의 제자들에 의해 그려졌다는 주장이 있다그리고 제작 시기가 앞서 언급한 동판화보다 이전인지 이후인지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다.

 

첫 번째 동판화는 등장인물의 배치에 있어서 매우 치밀한 구조를 가진다그리고 흑백의 대비로 극적인 효과를 나타낸다화면의 위쪽에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여관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며 강도만난 이를 잘 돌보아 주기를 부탁하고 있고아래쪽에는 말과 주변의 인물들이 있다초주검이 된 이가 말에서 내려지고 있고 다른 사람은 말의 고삐를 잡고 있다화면의 오른쪽에는 뒤편에 우물가의 여인이 있고 아래에는 개 한 마리가 용변을 보고 있다이 여인의 모습과 개의 등장은 렘브란트 동판화의 일상적인 현실성을 강조한다여관 주인사마리아인강도만난 이그리고 개는 왼쪽 위의 모서리에서 오른쪽 아래 모서리로 이어지는 대각선을 이룬다렘브란트는 왜 착한 사마리아인의 장면에 개를 등장시킬까이 개의 의미에 대한 비평가들의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강도만난 이를 여관에 데려온 이 순간에 무관심한 듯 개는 용변을 보고 있다렘브란트는 이 개를 통해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을 보고서도 그냥 지나가버린 사제와 레위인의 무관심을 풍자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착한 사마리아인을 그린 렘브란트의 유화는 앞서 살펴본 동판화와는 완전한 역방향으로 그려져 있다사마리아인과 여관 주인은 그림의 왼쪽에 배치되어 있다그림의 중앙에 흰말이 있는데한 사람이 강도만난 이를 말에서 내리고 있고 그 오른쪽에 다른 한 사람이 말의 고삐를 잡고 있다그림의 왼쪽 뒤편에 한 여인이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다그런데 이 유화에는 동판화에 등장했던 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예수님은 질문하신다.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인가?” 여기에서 예수님의 출발점은 길에서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의 상황이다이웃은 이런 저런 기준으로 우리가 규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우리가 걸어가는 삶의 길에서 만나는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우리의 이웃이다이 이웃 사랑이 바로 영원한 생명에로 이르는 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함께 아파하기” 에토스는 우리에게 하나의 새로운 사회적 비전이다그리고 우리 비유는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는 예수님의 초대로 끝난다이 말씀은 고통 받는 이와 함께 아파하기의 실천에로의 초대이다그것은 갈라진 공동체를 다시 회복하는 사회적 영성으로의 초대이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성서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예루살렘 성서·고고학연구소에서 성서학박사학위(S.S.D.)를 취득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빛, 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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