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의 성전 봉헌과 시메온(렘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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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획홍보분과 작성일23-09-26 10:32 조회47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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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해설 [성전 안에 아기 예수와 함께 있는 시메온]
렘브란트 반 렌(Rembrandt van Rijn, 1606-1669년), 1666-69년, 캔버스에 유채,
98×79㎝, 스톡홀름 국립박물관(스웨덴).
정웅모 신부의 아름다운 성화 아름다운 인생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는 세상을 떠나던 해에 ‘시메온의 예언’을 그렸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아기를 양팔에 조심스럽게 안고서 무슨 말을 하는 듯하다. 그 옆에는 어둠속에서 한 여인이 이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한 노인과 아기 예수의 극적인 만남은 마리아와 요셉이 정결례를 치루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 이루어졌다.(루카 2,22) 유대교 예식에 의하면 남아를 낳은 산모는 40일이 지나면 성전에 가서 정결례를 치르게 했다.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면서 구세주와의 만남을 갈구하던 시메온 예언자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감격스러워한다. 그저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던 늙은 예언자는 그 소망을 훨씬 뛰어 넘어 구세주를 자신의 품에 안은 것이다. 눈이 먼 것처럼 보이는 예언자는 육안이 아니라 심안으로 또는 영안으로 아기 예수의 정체를 꿰뚫어본다. 시메온은 양손으로가 아니고 그야말로 “두 팔로 예수 아기를 안고 있다.”(루카 2,28) 그는 자신의 손으로 구세주를 만지기에는 부당한 것처럼 느껴 손이 아니라 팔로 아기 예수를 받쳐 들었는데 이것은 그의 겸손한 삶을 드러낸다. 그가 가지런히 모은 양손은 기도하는 모습이다. 시메온 옆에 있는 젊은 여자는 성모 마리아인지, 아니면 태어나고 죽은 인간의 운명을 직시하는 관람자인지 불분명하다.
시메온은 아기 예수를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 2,29-32) 지난 주일은 날씨가 무척 더웠는데도 교중미사에 아기들이 많이 참석했다. 부모의 품에 안긴 아기들은 유아방에서 미사에 참석하는데 요즘에는 아기들이 부쩍 늘어 유아방이 좁을 정도다. 좀 더 쾌적하면서도 아늑하고 편리하면서도 아름다운 유아방을 꾸며 주기 위해 신자들과 함께 고민 중이다. 나는 미사 전에 고해성사를 준 후, 언제나 유아방에 들어가 꼬마 친구들에게 인사를 나눈다. 엄마의 품에 안겨오는 아기, 기어서 오는 아기, 뒤뚱 거리며 오는 아기, 달려오는 아기들의 해맑은 모습은 언제 봐도 즐겁다. 처음에는 아기들이 낯가림을 했지만 이제는 친한 사이가 되어서 서로 그리워한다. 그 가운데서 아직 두 살도 채 되지 않은 스텔라는 낯가림이 심해서 가족 이외에는 다른 사람에게 안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아기가 나에게는 주저하지 않고 다가와 잘 안기곤 한다. 그냥 안길 뿐 만 아니라 작은 손으로 내 목을 감싸 안아 주기까지 한다. 부모와 가족들은 스텔라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매우 신기해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스텔라가 사람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칭찬해줬다. 우리 성당에서 아기들을 안으면 구세주를 안고서 감격에 겨워하던 시메온 예언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시메온 예언자처럼 내 머리카락도 어느새 반백으로 변했고 눈도 침침하여 안경을 쓰지 않고서는 대상을 뚜렷이 볼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내 품에 안긴 아기들의 무게만큼은 여전히 잘 느낄 수 있다. 작고 연약한 아기지만 그 안에 담겨진 생명은 결코 작거나 약하지 않음을 잘 안다. 한 소중한 생명이 지금 내 팔에 안겨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놀랍게 여겨진다.
정웅모 신부(서울 장안동본당 주임)[가톨릭신문, 2013년 8월 11일]
성경, 문화와 영성 [시메온과 아기 예수님]
1669년 렘브란트는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은 루카 2,25-35의 이야기인 아기 예수님을 두 팔에 안고 하느님을 찬미한 시메온(Simeon)을 그린 것이다. 이 렘브란트의 유작(遺作)은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그것은 메시아를 안은 시메온의 모습을 통해서 인생과 신앙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던 천재적 화가 덕분이다. 먼저 우리는 시메온과 아기 예수님의 만남을 전하는 복음서의 본문을 읽고, 그것을 그린 렘브란트의 작품을 감상하도록 하자.
■ 루카 2,25-35과 시메온의 노래
● 아기 예수님의 부모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갔다.(루카 2,22) 레위 12,1-8에는 산모의 정결례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여자가 아기를 배어 사내아이를 낳았을 경우, 이레 동안 부정하게 된다.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하게 된다. 여드레째 되는 날에는 아기의 포피를 잘라 할례를 베풀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여자는 피로 더럽혀진 몸이 정결하게 될 때까지, 삼십삼 일 동안 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몸이 정결하게 되는 기간이 찰 때까지, 거룩한 것에 몸이 닿거나 성소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레위 12,2-4) 이 가르침에 따라 아들을 낳은 산모는 40일이 지나면 성전에 가서 정결례를 거행하였던 것이다.
● 성전에서 부모는 아기 예수님을 주님께 봉헌하였다. 그것은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루카 2,22) 그리고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루카 2,24)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을 때 시메온이라는 노인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루카 복음서에서 그는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 곧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던 이라고 소개된다.(루카 2,25) 성령께서는 그에게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을 때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분을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한다. 이것이 바로 “시메온의 노래”이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 2,29-32) 구세주를 기다리던 시메온은 마침내 메시아를 두 팔에 안고 감격하며 노래한다. 그의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신 메시아를 알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시메온의 노래”(Nunc dimittis)는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 루카 1,46-55), “즈카르야의 노래”(Benedictus, 루카 1,68-79)와 함께 루카 복음서에서 대표적으로 아름다운 하느님 찬가이다. 그래서 우리 가톨릭 교회는 매일의 성무일도를 바칠 때 아침기도에는 “즈카르야의 노래”, 저녁기도에는 “마리아의 노래”, 그리고 끝기도에는 “시메온의 노래”를 노래한다. “마리아의 노래”는 비천한 여종에게서 큰일을 하신 하느님을 찬미하며 질서의 재구성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2-53) 그리고 “즈카르야의 노래”는 복음을 해방에 대한 약속의 실현으로 본다.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루카 1,70-71) 이 소식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복음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메온은 마침내 구원을 보고 하느님을 찬미한다. 곧이어 시메온은 아기 예수님과 어머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한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 렘브란트의 시메온
● 렘브란트의 〈성전에서 아기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시메온〉(Simeon with the Christ Child in the Temple)은 1669년 캔버스에 그린 유화로 98× 79cm의 크기이며, 현재 스웨덴 스톡홀름의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것은 렘브란트가 죽은 이후 화실의 이젤(easel) 위에서 미완성인 채 발견된 작품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렘브란트는 이전에, 즉 1628년과 1631년에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시메온의 이야기를 그린 적이 있다. 젊은 시절에 그려진 앞의 두 작품에 비해 그의 유작에는 특징적인 차이가 발견된다. 1669년 당시의 렘브란트는 파산 상태에 있었다. 그의 시력은 약해져 있었고, 더 이상 그림 작업의 요청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아내와 다섯 자녀들이 먼저 죽었다. 그의 집과 재산은 빚을 갚기 위해 경매에 넘겨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렘브란트는 인생과 신앙에 대한 깊은 성찰을 시메온의 모습 안에서 형상화했던 것이다.● 이 그림의 어두운 배경은 검은 색이다. 이 배경 속에서 세 인물이 빛에 비추이며 나타난다. 백발의 노인이 두 팔에 아기를 조심스럽게 안고 있다. 그 옆에 한 여인이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이 여인이 성모 마리아인지는 불분명하다.●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주인공은 시메온이다. 그가 그린 시메온은 이미 앞을 잘 보지 못할 정도로 늙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원을 보았다.” 그는 눈이 먼 듯 거의 감겨진 눈으로 아기 예수님을 보고 있다. 시메온의 이마에는 주름살이 깊이 패어 있고 벗겨진 머리에 흰수염이 있는 얼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메시아를 기다려온 오랜 시간의 기다림과 인내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는 구원의 빛을 기다려온 예언자이다.● 그림 속의 아기 예수님은 이러한 시메온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그 아기 예수님에게 빛이 비추이고 있다. 늙은 노인의 두 팔에 아기가 안겨 있다. 사실 시메온은 예수님을 두 손으로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두 팔 위에 그분을 올려놓고 있다. 그가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은 기도하는 모습이다. 시메온의 두 손은 매우 거칠고 뼈마디가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다. 그는 아기 예수님을 손으로 만지기보다는 두 팔로 메시아를 받쳐 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메온의 겸손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시메온은 아기 예수님을 만난 깊은 감동에 겨워 입을 반쯤 벌리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도하고 있다.
*송창현 미카엘 신부[월간빛, 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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