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소감문] '풀꽃의 노래' <류영우 다윗 부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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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획홍보분과 작성일22-05-18 19:18 조회90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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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의 노래
해바라기가 부러웠습니다. 김정식 로제리오 형제님의 유명한 노래 '해바라기 노래'처럼 불타는 사랑으로 해를 닮은 꽃'이 되고 싶었고, '언제나 해를 향해 깨어 사는 맘'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바라기 꽃처럼', '해바라기 마음처럼' 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불타던 사랑은 이내 시들어 가고, 해를 향해 드높이던 고개는 꾸벅꾸벅 졸음에 못 이겨 뉘엿뉘엿 저물어 갔습니다. 밝은 빛깔로, '사랑의 꽃잎'으로 모두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 다짐하고 바라던 마음. 그 마음은 시간이 흘러감에 기운이 점점 빠지고 바래져 갔습니다.
해가 너무 눈부시고 뜨거웠을까요? 아니면 밭이 너무 거칠게 메말랐던 것일까요...열매와 꽃은커녕 줄기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처음에, 가장 맨 처음에 밭에 씨를 심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화사한 꽃밭을 상상하며, 싱그럽고 탐스러운 열매를 바라며, 설레어서 심던 성소의 씨앗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의 햇살을 받고, 이웃의 응원과 도움의 물을 머금고 싹을 틔우던 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훤칠하게 학문의 키가 크지도 않았고 우묵하게 깊고 넓은 마음도, 노랗게 빛나는 사랑의 꽃잎도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저는 해바라기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해바라기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순간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나의 씨앗은 도대체 뭘까? 나는 해바라기가 되고 싶었는데, 왜 그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없었던 거지? 이럴 거면, 처음부터 말해줬다면, 그렇게 크고 높은 꿈을 갖지 않았을 텐데...
해바라기. 너무 유명한 꽃이고 정말 아름다운 꽃이지요. 길쭉한 줄기에, 새까많게 빽빽이 늘어선 담백한 씨앗, 그리고 무엇보다 밝게 빛나는 노랗고 큰 꽃잎은 누가 보더라도 '아! 해바라기다!' 하고 탄성을 지르게 하는 꽃입니다.
저는 하느님 앞에서, 이웃들에게 그런 꽃이 되고 싶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저를 무난하고 평범한,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세상에 툭-던져 놓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저를 선택하셨다면, 특별하고 둘도 없는 방법으로 불러주고, 키워주시기를 원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실망이 더 컸었습니다.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나를, 해바라기도 아닌 나를, 왜 부르셨을까?
특별함. 아름다움. 유명함. 탁월함은 하느님께서 가지셨고, 제게는 없었던 그런 것들, 그리고 하느님을 따르면, 그분이 불러주시면, 자연스레 생겨나고 얻어지는 것들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가장 맨 처음에 밭에 씨를 심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밭은 누구에게서 받았을까? 하고 되물었습니다. 씨는 누구에게서 얻었을까? 하고 되물었습니다. 물은 어떻게 나에게로 왔을까? 하고 되물었습니다
그곳에, 늘 하느님이 계셨습니다
모든 것이 평범한 줄 알았고, 모든 것이 그저 지나가고 흘러가는 일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특별했고,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맨 처음, 해바라기를 부러워했던 이유를 떠올렸습니다. 해바라기가 아름다워서도 아니었고, 해바라기가 유명해서도 아니었습니다. '해를 닮은 꽃', '해를 향해' 사는 삶, 그것이면 충분했습니다. 굳이 '해바라기'가 아니어도 좋았습니다. 언제든 몇 번이라도 '해 바라기'를 할 수 있다면 이름 없는 풀꽃이어도 좋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원래부터 저는 어디서나 피는, 어느 때라도 피어나는 풀꽃이었던 것입니다.
제 욕심을 내려놓고,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별 볼 일 없었습니다. 마음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았습니다. 이제 저는 저 자신의 모양새를 보기보다는, 저 자신의 모양새를 뽐내기보다는, 한 번 더 해를 바라보고, 한 번 더 해를 바라는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요.
하느님께서는 저를 그렇게 불러주셨습니다. 별 볼 일 없는 풀꽃으로, 그렇게 저는 어디에서나 피어 그분을 바라봅니다. 행복하게 주님을 참양하며, 기쁘게 주님을 전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저는, 저만의 노래 '풀꽃의 노래'를 오늘도 불러봅니다.
류영우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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