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소감문] 십자가의 은총 <김미경 수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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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획홍보분과 작성일23-06-24 16:21 조회3,58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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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은총
첫영성체를 받는 어린이들을 보며 울 아들이 떠올려졌고 순수하고 예쁜 모습에 눈물이 나올 뻔했습니다. 울 아들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내 가슴이 기쁨으로 터져버릴 것 같은 행복감과 자신감을 준 아들이었고 뭐든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만들 줄 알았습니다. 이런 내 마음을 하느님은 여지없이 깨뜨려 부숴버렸습니다. 정말 난 헤어 나오기까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밖으로 보여지는 제 모습은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텅 빈 강정처럼 비어 버렸던 내 마음도 점점 하느님으로 채워져 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꿈꾸는 욕망에 인간이 금방 시들어 버리는 풀꽃 같은지, 내가 목메고 꿈꾸었던 것이 무너져 내릴 때 나의 무지하고 어리석은 교만함이 보였습니다. 내 것이 아니었는데 내 것이라고 우겼습니다. 하느님이 허락하셔야만 받을 수 있는 거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아이들의 맑고 순수함이 어른들의 상처로 얼룩지지 않길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그래도 첫영성체를 받게 해주신 어른들이 주변에 계시기에 잘 자랄 거라 믿습니다.
제 구역에 할머니 한 분은 첫영성체를 위해 손녀가 수학학원을 한 달 쉬고 다시 시험 보고 들어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치동 동네에서 흔하지 않은 일이고 용기 있는 일이라 내심 놀라웠습니다. 저라면 그렇게 못했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 지나놓고 생각해 보니 학원 한 달 빠진다고 아이의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데 말입니다. 신앙은 길게 보면 아이의 인생을 바르고 큰길로 인도한다고 생각됩니다. 좋은 할머니를 둔 아이입니다. 내가 지나온 길을 보니 어떤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세속적인 것은 영성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 하느님이란?’ 글을 써달라고 요청받았을 때 좀 의아스럽고 놀라기까지 했습니다. 난 그리 신심이 깊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고 나의 꼭꼭 숨겨 둔 십자가를 들킨 기분이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십자가. 하지만 지금은 십자가가 고통이 아니라 은총이라는 것을 느끼며 좀 아이러니하지만 내가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성당을 다니며 배운 것이기에 이젠 은총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고통 속에 은총이 있다.’라는 말 아마도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사람들도 계실 것이고 저도 그러했습니다.
구역에 반장을 억지로 맡게 되면서 코로나가 시작되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가면서 반 형님들이 말씀하시는 은총을 약간 맛본 느낌이었습니다. 아쉬움에 반장을 더 연장하면서 은총의 비를 맞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레지오까지 들어가니 은총의 비는 폭우처럼 쏟아졌습니다. 형님들과 자매님들은 나의 부족함을 감싸 안아주시고 용기와 자신감을 북돋아 주며 나의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어 주시는 놀라운 분들이셨습니다. 제 미래의 믿음 있는 사람의 본보기를 보여주셨습니다. 혼자서만 왔다 갔다 하는 신앙생활하고는 차원이 달라졌습니다. 봉사하며 자매님들을 만나며 믿는 사람들과의 신심의 어울림은 바깥세상 사람들하고는 달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관계에 대한 실망과 가벼움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성서를 읽으며 극복해 나갔습니다.
나에게 지금도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제 안에 타오르는 촛불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항상 마음속으로 되새기는 말씀은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요? 내가 그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을 따라 갚는다.” (예례 17,9) 이 말씀은 모든 인간에 대한 끝판왕으로 통쾌하기까지 했습니다. 머리가 쪼개지며 폭포수가 떨어지는 경험을 하며 너와 나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면서 지금은 인간에 대해 그리 연연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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